유니버설디자인, 왜 사인에도 필요할까요?
유니버설디자인이란?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은 나이, 장애 유무, 언어와 신체적 조건의 차이를 고려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제품과 환경,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설계하는 접근입니다. 누구나 하나의 기준에 맞추기를 기대하기보다, 처음부터 서로 다른 이용 조건을 설계 안에 담는다는 뜻이죠.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유니버셜디자인센터]
다양한 이용자를 고려한 공간 안내 · 설명용 생성 이미지
사인디자인에서도 이 관점은 중요합니다. 같은 안내판을 보더라도 어린이와 성인의 눈높이는 다르고,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익숙한 이용자보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시력이 낮은 이용자는 글자와 배경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고,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방문자는 공간의 이름부터 해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과 그 공간을 스스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출입구를 통과했더라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면, 공간을 이용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사인은 공간의 이름을 표시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발견하고, 그 뜻을 이해한 뒤 다음 이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유니버설디자인을 사인에 적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01
이해할 수 있도록.
02
스스로 이동할 수 있도록.
03
공간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01. 필요한 정보가 먼저 보이도록
Q. 안내판에 정보를 많이 넣으면 더 친절한 사인이 될까요?
A. 정보를 많이 담는 것보다 필요한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편이 더 친절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가 지금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죠.
박물관을 처음 찾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입구에서는 전시실과 안내데스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만, 전시실 앞에 도착한 뒤에는 이곳이 내가 찾던 공간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지죠. 같은 사람이라도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필요한 정보가 달라지는 셈입니다.
이 차이를 설계에 반영하는 방법이 정보의 위계인데요. 정보를 중요도와 역할에 따라 나누고, 읽는 순서를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적지 이름과 방향은 먼저 눈에 들어오게 하고, 운영시간이나 이용 설명은 그다음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방식이죠. 유니버설디자인의 원칙에서도 불필요한 복잡함을 줄이고, 중요도에 맞게 정보를 배열하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 종합안내사인 설계안을 보면 층수와 공간명, 픽토그램의 크기와 위치가 서로 다르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먼저 가려는 층을 찾고, 그 안에서 목적지를 확인하도록 읽는 순서를 만든 것인데요. 흑백으로 나눈 면은 층별 정보를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숫자와 공간명은 색상 외에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정보를 많이 담기보다,
필요한 정보가 먼저 보이도록.
종합안내사인의 구성과 설치 위치
엘리베이터 앞은 어느 층으로 이동할지 결정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종합안내를 두면 탑승하기 전에 목적지와 층을 연결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안내판 안의 구성만 보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주변 마감과 잘 구분되는지, 이용자가 서서 읽거나 가까이 접근할 자리가 있는지, 다른 시설물에 가리지는 않는지도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죠. 평면 시안과 공간 적용 이미지를 나란히 살펴보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갈림길에 종합안내판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종합안내는 공간 전체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복도의 분기점에서는 지금 선택해야 할 방향과 목적지를 간결하게 보여주는 편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인을 계획할 때 “이 위치에서 이용자는 무엇을 결정해야 할까?”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 답이 분명해지면 이 안내판에 남겨야 할 정보와 다른 위치에서 알려줄 정보도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02. 잘 읽히는 사인은 글자 크기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Q. 글자를 크게 만들면 누구나 잘 읽을 수 있을까요?
A. 글자 크기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서체와 간격, 배경과의 대비, 읽는 거리와 조명 조건이 함께 맞아야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안내판을 발견할 수 있는가와 내용을 읽을 수 있는가를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인이 눈에 띄더라도 글자가 복잡하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글자가 또렷해도 기둥이나 다른 시설물에 가려져 있다면, 안내판이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배경과 글자의 색도 단순히 서로 다르게 정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이 밝고 어두운 정도의 차이, 즉 명도 대비인데요. 색상은 달라도 밝기가 비슷하면 문자 윤곽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재료와 빛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화면에서 잘 보이던 글자가 광택 있는 금속이나 유리 위에서는 조명과 햇빛의 반사 때문에 흐려질 수 있죠. 미국 Access Board의 사인 안내에서도 문자와 배경의 대비뿐 아니라 눈부심을 줄이는 마감, 문자 형태와 간격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설계를 사이니지에 적용한다는 것은 안내판과 함께 그 안내를 읽는 사람의 위치까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아래 설계 가이드에서는 서 있는 사람과 휠체어 이용자의 눈높이, 시야, 손이 닿는 범위를 비교해볼 수 있는데요. 멀리서 눈으로 찾는 정보와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읽는 정보는 사용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설치 위치도 각각의 역할에 맞춰 검토해야 하죠.
안내판만큼 중요한 것은,
그 안내를 읽는 사람의 위치입니다.
잘 보이는 높이와 색상으로 안내하기
01눈높이와 시야

- 휠체어 이용자 눈높이 예시
- 1,220mm
- 서 있는 이용자 눈높이 예시
- 1,550mm
- 이용자와 안내판 사이의 거리
- 1,830mm
UNSW 사인 가이드(2023)의 시야 검토 예시입니다. 실제 이용자의 눈높이와 읽는 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02문자와 배경의 대비
색상별 밝기와 대비 계산식

색상표의 수치와 계산식은 원본 설계자료에 제시된 비교 예시입니다.
같은 배경에서 문자 색상 비교

위 그림에 표시된 휠체어 이용자 눈높이 1,220mm, 서 있는 이용자 눈높이 1,550mm, 가로 거리 1,830mm는 호주 UNSW의 2023년 사인 가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1,830mm는 사람과 사인 사이에 설정한 거리입니다. 이 값들은 시야를 설명하기 위한 참고 예시이며, 모든 이용자에게 적용되는 공통 눈높이나 설치 높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UNSW 사인 가이드 · 465쪽]
눈높이는 사람의 체격과 자세, 사용하는 휠체어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국 교통부의 안내서는 인용된 조사자료에서 휠체어 이용자의 눈높이를 960~1,250mm 범위로 설명하는데요. 이는 조사 대상의 5~95백분위 범위로, 모든 사람의 최소·최대 눈높이는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의 평균값에 맞추기보다 낮은 눈높이에서도 안내를 읽을 수 있는지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영국 교통부 Inclusive Mobility · 21쪽]
눈으로 읽는 높이와 손으로 읽는 높이도 구분해야 합니다. 미국 ADA의 1,220~1,525mm는 촉각문자의 가장 아래·위 줄 기준선에 적용하는 설치 높이로, 사람의 눈높이나 안내판 중심 높이와는 다른 기준입니다. [미국 Access Board · 촉각문자 설치 높이]
위 자료는 이용 조건을 비교하기 위한 설계 참고자료입니다. 실제 적용할 때는 시설의 조건과 해당 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평균 눈높이를 적용하기보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도 정보를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는 점이죠.
이런 이유로 디자인 검토는 컴퓨터 화면에서 끝내기 어렵습니다. 멀리서 읽는 방향사인인지,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는 실명사인인지에 따라 조건을 나누고 실제 설치 위치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서 있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 낮과 저녁의 밝기 차이까지 확인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잘 읽히는 사인을 만들려면 글자의 크기와 함께, 그 글자를 읽게 될 공간의 조건도 맞춰가야 합니다.
01
읽는 조건에 맞게.
02
함께 살피도록.
03
현장에서 확인하도록.
03. 보는 정보와 만지는 정보는 서로를 보완합니다
Q. 픽토그램과 점자를 넣으면 유니버설디자인 사인이 되는 건가요?
A. 픽토그램과 점자를 넣는 것은 출발점입니다. 각각 어떤 정보를 전하고, 이용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까지 연결해서 살펴봐야 하죠.
픽토그램은 공간의 기능을 그림으로 알려주는 요소입니다. 다만 그림이라고 해서 누구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데요. 익숙하지 않은 형태나 지나치게 장식적인 표현은 오히려 해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쉬운 공간명과 함께 표시하면 그림의 뜻을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색상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시구역을 색으로 나누더라도 “초록색을 따라가세요”라는 안내에 구역명이나 번호를 함께 표시하는 것이죠. 그러면 색을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단서를 통해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점자는 눈으로 보는 안내를 손으로 읽는 정보로 보완합니다. 이때는 점자가 있는지만큼이나 그 위치를 찾을 수 있는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지, 손을 뻗어 읽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머리 위의 방향안내판과 손으로 읽는 안내판은 사용 방식이 다르니, 같은 위치나 높이로 계획하기는 어렵습니다.
점자는 의미를 전달하는 문자 체계인 만큼, 문구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는지와 손으로 구분할 수 있게 제작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단순히 돌기 모양을 더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하기는 어렵습니다. 돌출문자와 점자에 관한 사인 지침이 내용뿐 아니라 형태와 간격, 설치 위치까지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핵심은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문자와 그림, 촉각 정보가 서로 보완하면 이용자는 자신의 조건에 맞는 단서를 활용할 수 있죠.
04. 길 안내는 목적지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Q. 눈에 잘 띄는 안내판 하나로 길찾기가 해결될까요?
A. 길찾기는 이동하면서 여러 번 방향을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안내판 하나의 가독성만큼이나 다음 안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공간을 이해하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도록 돕는 전체 체계를 웨이파인딩(Wayfinding)이라고 합니다. 사인 하나의 모양뿐 아니라 공간 구성, 목적지의 이름, 방향 안내와 도착 확인까지 함께 살펴보는 관점인데요. 안내판들이 이동 과정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입구에서 전시실 방향을 확인했더라도 다음 갈림길에 안내가 없다면 다시 멈추게 되겠죠. 그래서 방향사인은 선택이 필요한 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동 중에는 올바른 경로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도착한 뒤에는 목적지 이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공간의 이름은 이동하는 동안 일관되게 이어져야 합니다. 이미지처럼 왼쪽 방향안내에 ‘제1전시실 / Exhibition Hall 1’을 표시하고, 도착 지점에도 같은 이름을 쓰면 이용자는 자신이 찾던 공간에 도착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안내하는 ‘교육실 / Education Room’은 그 아래에 간격을 두어 각각의 목적지를 구분하기 쉽게 정리한 것이죠. 종합안내부터 복도와 출입구까지 같은 명칭을 사용하면, 처음 방문한 사람도 공간의 이름을 다시 해석하는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안내하는 길이 실제로 이용 가능한 경로인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가까운 길이 계단으로 이어진다면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에게는 다른 경로가 필요하겠죠. 접근 가능한 길이 마련되어 있어도 갈림길에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이용자는 길을 되돌아와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방문한 사람이 실제로 길을 찾아보는 과정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떤 표현을 다시 읽는지, 어느 지점에서 길을 묻는지 관찰하는 것이죠. 이런 장면을 통해 안내가 더 필요한 곳이나 명칭을 바꿀 부분, 위치를 조정할 사인을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디자인시기 인사이트
디자인시기는 사인을 계획할 때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의 입장에서 공간을 살펴보려 합니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길도 처음 온 사람에게는 낯설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때 기준으로 삼는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01
02
03
글자가 또렷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으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전시실 방향을 따라갔는데 계단 앞에서 돌아와야 한다면,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안내가 되기 어렵겠죠. 그래서 사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뿐 아니라, 어디에 설치하고 어느 길로 안내할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이런 점은 사인을 다 만든 뒤에 보완하기보다 공간을 계획할 때부터 함께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 있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에게 안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처음 온 사람이 어느 갈림길에서 망설일지 미리 살펴보는 것이죠. 그 공간을 이용할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데서 유니버설디자인이 시작됩니다.
공간의 분위기와 브랜드의 개성을 담는 일도 놓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도 길을 쉽게 찾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면 더 좋은 디자인이 될 것입니다. 디자인시기는 공간과 잘 어울리면서, 이용자에게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는 사인을 만들고자 합니다.
Q&A
Q. 기존에 설치한 사인도 유니버설디자인 관점으로 개선할 수 있나요?
A. 네, 기존 사인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용자가 어디에서 길을 찾기 어려워하는지 살펴보면 좋은데요. 전체를 교체하지 않더라도 공간명을 통일하거나 정보 순서와 대비, 설치 위치를 조정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점자나 접근 가능한 경로 안내처럼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함께 보완하는 것이죠.
Q. 브랜드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잘 읽히는 사인을 만들 수 있나요?
A. 네,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색상과 소재로 공간의 분위기를 표현하면서, 목적지 이름과 방향은 명확하게 읽히도록 역할을 나누는 방식인데요. 브랜드 서체가 작은 크기에서 읽기 어렵다면 안내 문구에 가독성이 좋은 서체를 함께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개성과 정보 전달이 조화를 이루도록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유니버설디자인을 고려한 사인 계획은 언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A. 공간의 배치와 동선을 계획할 때부터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입구와 갈림길, 엘리베이터의 위치에 맞춰 안내를 정하면 설치할 자리와 접근 여유도 미리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미 운영 중인 공간이라면 평면도와 기존 사인 사진, 이용자가 자주 묻는 내용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